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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하는 공사비 갈등…"건설사, 돈되는 정비사업만 수주한다"

심화하는 공사비 갈등…"건설사, 돈되는 정비사업만 수주한다"

  • 2023-05-21 10:20

7월부터 서울시 조합설립인가 이후 시공사 선정…압구정 현대 등 100여곳 대기
서울 공사비 3.3㎡당 700만원 넘어…대형 건설사 수주 인력 늘리고 수주 채비
공사비 낮은 기존 사업장은 곳곳 갈등에 사업 차질…시공사 교체 추진도

하반기부터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연합뉴스하반기부터 재건축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오는 7월부터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시공사 선정 시기가 현행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앞당겨짐에 따라 서울시내 알짜 정비사업 시공권을 따내기 위한 건설사들의 수주 전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반면 기존에 낮은 금액에 공사계약을 맺고 사업을 추진하던 정비사업들은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갈등이 계속되며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건설사들이 수익성이 예상되는 공사 수주에만 몰리고, 수익성이 낮은 곳은 사업 포기도 불사하는 등 정비사업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하는 모습이다.

하반기 서울 100여곳 시공사 선정…인력 늘리고 전열 가다듬는 건설업계

2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서울시의 개정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안'이 시행되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현행 사업시행인가 이후에서 조합설립인가 이후로 크게 당겨진다. 업계는 이 경우 정비사업의 시공사 선정 시기가 종전보다 최소 1~2년가량 앞당겨져 시공사 보증으로 사업 초기부터 사업비 조달(대출)이 쉬워지고, 인허가 등 사업 절차도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공개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가운데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곳은 116개 단지에 달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7월부터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강남지역의 재건축 '대어'(大魚)로 꼽히는 강남구 압구정 현대아파트 재건축 지구를 비롯해 개포동 주공 5·6·7단지, 서초구 신반포 2·4·7·12·16·20차 등이 곧바로 시공사 선정이 가능해진다. 성동구 성수동 전략정비구역이나 용산 정비창 일대 등 강북의 인기 재개발 구역들도 조합설립인가 단계로, 7월 이후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시내 저층 재건축이 마무리된 후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만한 중고층 재건축 단지와 재개발 시공사 선정이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것"이라며 "건설사 입장에서는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따내야 하는 상징성 있는 사업장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서울지역 정비사업 수주에만 참여하고 있는 삼성물산[028260]을 비롯해 정비사업 강자인 현대건설, GS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등 대형 건설사는 최근 자체 정비사업 인력을 확대 보강하며 본격적인 수주전에 대비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래에 큰 시장이 열리는 수도권 1기 신도시도 서울만큼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며 "서울 요지의 정비사업을 놓고 대형 건설사의 치열한 수주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일부 건설사들은 이미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인력을 파견해 조합을 상대로 사전 영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업계는 다만 서울시가 시공사 조기 선정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종전의 '내역입찰'을 유지하기로 함에 따라 준비기간으로 인해 조합의 시공사 선정 총회는 올해 말부터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내역입찰은 시공사의 일방적인 공사비 증액 등을 막기 위해 시공사 선정 때 설계와 함께 세부 공사 물량 내역을 제출하도록 한 것이다. 서울시는 시공사 선정 당시 설계부터 자재 조달, 시공까지 일괄 책임지도록 하는 턴키 방식의 입찰도 허용할 방침이다.

J&K 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사업 초기에 시공 내역이 확정되면 건설사 입장에선 공사비 변동 등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워지는 등 리스크가 커지는 부담이 있지만, 서울 요지의 정비사업 수주를 포기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하반기부터 수주전이 본격화하되 내역입찰 준비 때문에 실제 시공사 선정 총회는 올해 말부터 내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형 건설사들이 서울 알짜 단지 수주에 주력하는 것은 최근 자재비와 인건비 급등으로 공사비가 30% 가까이 오른 것도 주요 원인이다. 현재 수도권과 지방의 신규 공사비 계약 단가가 3.3㎡당 500만~600만원대에 책정되는 반면, 서울은 이미 3.3㎡당 700만원을 넘어섰다. 최근 정비구역 지정안을 고시한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도 재건축 공사비를 3.3㎡당 700만원으로 책정해 일반분양가 추정액을 3.3㎡당 7천700만원으로 산정했다.

한국주택협회 이동주 산업본부장은 "자잿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기존 사업장에서 공사비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서울에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신규 단지들은 공사비가 그나마 3.3㎡당 700만원 중반에서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업계가 수주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지는 곳곳에서 공사비 갈등…"지방 시공권 포기 늘 것"

그런가 하면 현재 조합이 책정한 공사비가 낮아 수익성이 떨어지는 곳은 건설사들이 달려들지 않아 시공사를 찾는 데 애를 먹는 곳도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8구역은 두차례 시공사 선정 경쟁 입찰에서 롯데건설만 단독 입찰해 유찰됐고, 서울 중구 신당9구역도 건설사들이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수의계약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의 도마변동2구역은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유찰을 거듭하다 이달 초 포스코건설과 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을 수의계약 형태로 시공사로 선정했다.

과거에 건설사와 조합이 낮은 금액에 시공 계약을 체결한 곳은 최근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며 곳곳에서 사업 차질을 빚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산성구역 주택재개발 조합은 시공사업단(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과 공사비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결국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고 있다. 시공사업단은 당초 계약한 공사비 3.3㎡당 445만원보다 높은 620만원(지하 발파공사비 제외)을 요구하고 있으나, 조합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수원 권선6구역 재개발 사업지는 조합과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으로 일반분양이 지연되고 있고, 서울 서초구 신동아 아파트도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갈등으로 사업이 답보 상태다.

건설업계는 오른 공사비 반영이 쉽지 않은 곳은 수주에 참여하지 않고, 이미 수주한 단지에서도 건설사 스스로 시공을 포기하는 곳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웬만한 갈등으로 시공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1~2년 새 공사비가 30%나 뛰니 적자를 보면서까지 공사를 지속하긴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분양가와 공사비 인상이 힘든 지방 등에서 건설사들이 시공사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는 앞으로 서울의 대단지 등 사업성이 밝은 곳은 건설사의 수주 경쟁이 치열하고 자잿값과 인건비 감당이 힘든 지방이나 일부 수도권은 건설사들이 외면하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조합·시행사 등 사업 주체와 시공사 간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현재 신규 분양도 계속해서 미뤄지는 추세"라며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낮은 곳은 외면하면서 앞으로 주택 공급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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