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프로 사용 장면. 애플 홈페이지 캡처#1. 코뿔소가 무리지어 다가왔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났다.
#2. 이번에는 농구 코트. 선수들이 골대에 내리 꽂는 농구공이 튀어왔다. 역시 가짜 영상인 줄 알았지만 공을 막는 것처럼 손을 휙 내저었다.한국에 공식 출시된 애플의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영상을 보면서 벌어진 일이다. 비전 프로는 올해 초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 출시된 이후 아이폰만큼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미국 출시 전까지 기대가 한껏 높아졌다가 신통치 않은 반응이 나오자 한 풀 꺾이기도 했다. 가상 현실이 가상 현실이지, 얼만큼 실제에 가깝겠냐는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 비전 프로가 제공한 가상 현실을 경험하고 나니, 글로만 읽고 보는 것과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비전 프로, 예약만 하면 30분 동안 애플 스토어에서 체험 가능
애플 비전 프로는 머리에 쓰면 화면이 달린 고글이 눈을 가리는 헤드셋 형태의 기기다. 애플 코리아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예약만 하면 30분 동안 체험해볼 수 있다. 예약할 때 △안경 착용 여부, △콘텍트 렌즈 착용 여부 등까지 체크하면 "데모 준비가 완료됐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
취재진이 예약한 20일 오후 3시 명동 애플 스토어에 도착했다. 매장에는 비전 프로 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체험을 도와주는 직원이 예약 여부를 확인하고 일대일로 착용 방법과 사용 방법 등을 알려주고 안내한다. 애플 직원은 비전 프로를 '공간 컴퓨터'라고 강조했다. 체험을 할 때 헤드밴드는 '듀얼 밴드'였다. 무겁다는 지적을 고려한 듯, 무게를 뒤쪽에서만 잡는 게 아니라 위에서도 잡아줬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기 위해선 먼저 페이스ID 기능이 있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로 내 머리 크기 등을 측정한다. 아이폰이 없거나 페이스ID 기능이 없어도 상관 없다. 직원들이 페이스ID 기능이 있는 아이폰으로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도와 준다. 좌우, 상하로 고개를 살짝 돌리기만 하면 크기가 측정된다.
자신의 머리 크기에 맞는 비전 프로가 오면 이제 착용한 후 사용법을 알려준다. 비전 프로에서 '마우스' 역할을 하는 건 눈과 손의 움직임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눈으로 바라본 뒤, 엄지와 검지를 살짝 마주하면 선택된다. 손은 무릎 위에 편히 두어도 되고 허공에서 움직여도 괜찮다.
허공 위에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메인 화면처럼 기본 앱들이 배치된 모습에서 '시선'으로 원하는 앱을 바라보고 엄지와 검지를 살짝 마주하면 앱이 실행된다. 화면의 확대나 축소, 위아래나 양옆 이동도 모두 손가락만으로 가능했다. 처음엔 조작이 어렵나 싶지만, 애플 답게 직관적이다보니 사용법이 익숙해졌다.
가상 현실 360도 배경으로 작업 가능
조작법을 익힌 후 비전 프로로 찍은 사진을 실행했다. 애플이 홍보한대로 '심도'가 있어 '공간감'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가상인 줄 알면서도 바로 옆에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비전 프로에서 찍은 심도 있는 사진은 다른 기기로 보내면 심도가 사라진다.
사진보다 놀라웠던 건 '환경' 기능이었다. 기기 우측의 '디지털 크라운' 버튼을 돌리면 주위를 가상 현실로 만들어준다. 체험에서 제공된 데모는 남태평양 휴양섬인 '보라보라섬'의 모습이었다. 방금 전까지 명동의 애플 스토어였고 옆의 사람들도 언뜻 언뜻 보였다면, 환경 기능을 키면 마치 보라보라섬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잔잔한 파도도 보였다. 이 환경 기능에서 다른 앱들을 실행해 작업도 할 수 있었다. 사진 앱을 켜서 다시 보고 실행도 가능했다.
체험의 하이라이트는 애플이 비전 프로 기능 소개를 위해 제작한 이머시브(Immersive) 영상. 높은 절벽에서 줄에만 의지해 걸어가고 있는 여자가 나타나더니 코끼리가 진흙으로 샤워를 하고 갑자기 코뿔소 무리가 내 앞으로 다가오는 듯한 영상이 나왔다. 가상 현실인 줄 알면서도 공간감 때문에 실제인 듯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비싼 가격과 무게는 '넘어야 할 산'
약 30분 동안 체험을 하고 난 후 애플 직원은 "혹시 구매할 의사가 있냐"고 물었다. 체험하기 전의 기대보다 확실히 '공간 컴퓨터' 체험은 상상 이상으로 즐거웠다. 그러나 역시 구매를 멈칫하게 하는 건 가격. 비전 프로의 가격은 499만원부터 시작한다. 일반 사진·비디오보다 훨씬 큰 용량을 요구하는 공간 사진·비디오의 특성을 감안하면 1TB는 사실상 필수적인 옵션으로 보인다. 이 경우 가격은 559만원까지 오른다.
성인 여성이 착용하기에는 무게도 확실히 느껴졌다. 밴드가 2개 있는 듀얼밴드였음에도 본체 무게만 600g이 넘기에 목에 하중이 실렸다. 30분 간의 체험을 하고 난 뒤에는 광대뼈와 이마에 자국이 날 만큼 압박도 느껴졌다. 애플이 강조하는 '공간 컴퓨터'인만큼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업무를 하는 건 목에 무리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험 후 직원에게 구매한 사람들이 있는지, 왜 구매했는지 되물었다. 체험을 하고 난 후 일상에서의 활용도를 많이 묻고, 확실히 체험 후 관심도가 올라갔다고 전했다. 구매한 분들은 공간 컴퓨터로 근무 환경을 구축하길 원해서나 TV를 없애고 화면을 180도 또는 360도로 느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