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KB손해보험과 농협생명보험, 하나손해보험은 2018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지상 42층 높이의 '20타임스스퀘어' 건물에 각각 535억 원, 571억 원, 114억 원씩 투자했다. 자산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통해 이 건물 중순위 대출 채권에 투자한 것이다.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이 호화 상업용 건물에선 임대 수익 뿐 아니라 건물을 두른 전광판을 통한 광고 수익도 기대됐지만, 내부 호텔 준공이 지연되고 코로나19까지 덮치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 결과 해당 투자 원금은 사실상 전액 손실 처리됐거나, 향후 일부 회수가 이뤄지더라도 미미한 수준일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공격적으로 이뤄진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가 고금리 장기화 국면을 거치며 손실 우려를 낳으면서 주요 시장 불안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해당 투자 건이 대형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손실 부담이 큰 일부 중소형 금융사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5대 금융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 1조 원 넘어
연합뉴스국내 5대 금융그룹의 해외 부동산 투자 평가 손실액(미확정 평가액)은 올해 초 1조 원을 넘어섰다. 2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달 16일 기준 5대 금융그룹(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해외 부동산 투자 건수는 총 782건, 전체 원금은 20조 3868억 원으로 집계됐다. 고객에게 판매한 펀드 등과 별개로 은행, 증권, 보험 등 그룹 계열 모든 금융사들이 자체 집행한 투자 현황이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덜 한 대출을 제외하고, 수익증권·펀드 등을 통한 투자 건수는 512건으로, 원금 규모는 10조 4446억 원이다. 해당 자산 평가 가치는 총 9조 3444억 원으로, 투입 원금 대비 1조 1002억 원이 줄면서 -10.53%의 평가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대출 외 투자액은 KB금융이 2조 8039억 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신한금융 2조 7797억 원, 하나금융 2조 6161억 원, 농협금융 1조 8144억 원, 우리금융이 4305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해당 투자 원금 대비 평가 가치는 그룹별로 하나금융 -12.22%, KB금융 -11.07%, 농협금융 -10.73%, 신한금융 -7.90%, 우리금융 -4.95%로 나타났다.
금융권 전반으로 시각을 넓혀보면,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규모는 50조 원을 웃돈다. 금융감독원 현황 파악에 따르면 은행, 보험, 증권, 상호금융, 여신전문사, 저축은행 등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규모는 작년 6월말 기준 55조 8천억 원에 달한다. 보험사가 31조 7천억 원, 은행이 9조 8천억 원으로 증권사(8조 3천억 원)보다 규모가 크다. 전체 투자 규모의 25%인 14조 1천억 원은 올해 만기가 도래한다.
고금리 장기화·근무 환경 변화에…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 냉각
스마트이미지 제공국내 금융사들의 손실 추가 확대 가능성과 맞물린 건전성 악화 우려가 장기간 이어지는 원인은 해외 부동산 시장의 냉각 기류가 좀처럼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의 투자 비중이 높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고금리 장기화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근무 환경 변화로 가치가 크게 하락했다. 임대·매각 수익을 노리는 투자자들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국제금융센터가 이달 초 내놓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 동향' 보고서에도 "2022년 이후 고강도 긴축과 원격 근무 확대, 전자 상거래 증가 등 구조적 변화로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지난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모기지 부실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미국 상업용 부동산 전체 가격은 2022년 7월 고점 대비 약 11%, 오피스(도심업무지구)의 경우 약 40% 급락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특히 "오피스 공실률은 작년 4분기에 18.6%로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면서 시장 냉각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미국의 지역은행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도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실화 여파로 지난해 4분기 2억 5천만달러가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주가가 급락, 다시 한 번 은행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대형 위기 가능성 낮다" 평가…고금리 장기화는 변수
금융당국은 55조 원 넘는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액은 이들 회사 총자산(6762조 5천억 원)의 0.8% 수준이라며 "투자 손실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해왔다.
투자 규모가 금융권에서 가장 큰 보험사의 경우도 총자산에서의 비중은 작년 6월 말 기준 2.7%다. 해당 비중은 증권사가 1.2%로 보험사 다음으로 높다. 은행을 포함한 나머지 금융사들은 모두 0%대 수준이다. 당국은 투자 상품별 만기 도래 시점과 규모도 고르게 분포돼 있어 손실 충격이 특정 시점에 집중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시장의 평가도 크게 다르진 않다. 비(非)은행권 주요 투자 주체인 보험사와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를 분석한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작년 9월 보고서에서 "투자 손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며 "국내 증권·보험사의 이익 창출력을 통한 손실 흡수, 재무안전성 관리 등을 감안할 때 대체로 이에 대한 대응력은 충분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금융사는 손실 후폭픙을 감내하기 어려울 수 있어 주시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영업이익 규모 대비 손실 부담이 과도하게 높은 금융사들은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지원 한신평 금융1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이슈가 금융권의 전반적인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긴 할 것"이라며 "일부 회사는 양적 부담이 높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9월 금융안정 상황 점검 과정에서 '비은행금융기관의 해외 대체투자 리스크' 분석을 진행한 뒤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1년 이내 만기 도래 투자 규모가 큰 증권사의 경우 선순위 투자자 등과의 투자 조건 조정, 만기 연장 등을 통해 국내 금융 시스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며 "해외 대체투자의 경우 투자 심사 단계에서부터 리스크 평가 절차가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