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연합뉴스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고려아연과 영풍·MBK 연합 양측의 의결권 확보 경쟁도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임시주총은 넉달 넘게 이어진 힘겨루기의 분수령이자 경영 주도권 여부를 가를 승부처다.
경영권을 손에 쥐려는 양측이 '명분'으로 내세우는 주요 쟁점 중 하나는 바로 투명한 지배구조다. 그중에서도 영풍·MBK 연합 측이 특히 지배구조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경영권 박탈의 공세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같은 영풍·MBK 연합 측의 명분에 마땅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인 ESG 평가에서 되려 영풍 측이 고려아연과 비교해 객관적인 성과가 크게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고려아연, ESG 평가서 영풍에 우위
고려아연 박기덕 대표이사. 황진환 기자
16일 국내외 기관에서 실시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결과를 종합하면, 고려아연은 영풍에 비해 분명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한국거래소 ESG포털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올해 △서스틴베스트 △한국ESG연구소 △한국ESG기준원(KCGS)에서 각각 A·A·B+등급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고 평가하는 기관이다. 특히 서스틴베스트와 한국ESG연구소는 고려아연의 환경·사회·지배구조 모든 부문을 A등급으로 평가했다.
영풍의 경우 올해 서스틴베스트에서 C등급을 받았다. 한국ESG연구소와 KCGS는 영풍을 각각 B+와 B등급으로 평가했다. 지배구조에서 고려아연에 A등급을 부여한 서스틴인베스트와 한국ESG연구소는 영풍에 B등급을 부여했다. 영풍·MBK 연합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 개선을 경영권 확보 시도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정작 고려아연이 아닌 영풍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한 셈이다.
해외 기관에서는 두 회사의 격차가 더욱 눈에 띈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서 고려아연이 49점을 받은 반면 영풍의 ESG 점수는 15점을 기록하며 34점의 격차를 보였다.
ESG의 각 부분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먼저 한국거래소의 '지배구조보고서' 내 핵심지표 준수율을 기준으로 따져보면 고려아연은 80%로 평균을 상회한 반면 영풍은 53.3%에 그쳤다.
고려아연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를 봐도 지난해 고려아연은 지배구조 핵심 지표 15개 항목 가운데 12개 항목을 통과해 준수율 80%를 기록했다.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제도는 상장기업이 지배구조 핵심 원칙 준수 여부를 공시하도록 하고, 준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사유를 밝히게 함으로써 경영 투명성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다.
고려아연의 준수율 80%는 기업 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대상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가운데 고려아연이 속한 '자산규모 2조원' 이상 기업들의 지표 달성률은 평균 63%로 집계됐다.
고려아연이 준수하지 못한 3개 항목은 △현금 배당 관련 예측 가능성 제공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인지 여부 △집중투표제 채택 등이다. 고려아연이 최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해당 3개 항목에 대해서도 추진하기로 한 만큼 준수율은 100%를 달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영풍은 지배구조 핵심 지표 15개 항목 가운데 8개 항목을 충족해 준수율이 53.3%에 그쳤다. 고려아연은 물론 자산 2조원 이상 기업 평균 준수율인 63%에도 못 미친다.
환경·안전 부문서도 양사 격차 분명
연합뉴스환경과 안전 부문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일례로 지난 2019년 이후 환경법규 위반으로 양사가 받은 제재 건수를 비교하면 고려아연은 9건에 불과하지만 영풍은 2배 넘는 22건의 제재를 받았다.
특히 영풍 석포제련소는 폐수 유출로 60일 조업정지를 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황산가스 감지기를 끄고 조업한 사실이 적발돼 추가로 10일 조업정지 처분을 받는 등 개선 의지도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안전 부문에서도 영풍은 지난해 12월 비소 중독 근로자 사망사고로 박영민 대표이사와 배상윤 제련소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같은 격차는 최근 고려아연 임시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자문사들이 내놓은 분석 리포트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한국ESG평가원은 "고려아연의 장기지속성장과 주주권익 측면에서 현재 경영진 측이 보다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며 "경영 실적과 주주환원, ESG 평가 등에서 고려아연이 영풍 대비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서스틴베스트의 경우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 이사회 이사진 후보로 추천한 강성두 영풍 사장에 반대 의견을 내놓으면서 "강 후보가 사장으로 재직 중인 영풍의 재무성과와 지속가능경영 성과는 저조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전문성 측면에서 타 후보가 장기적 주주가치 증대에 더 적합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