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총괄선대위원장 등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시청하는 모습. 연합뉴스야권의 압승으로 끝난 4.10 총선 결과 국민의힘은 개헌저지선을 넘긴 10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산술적으로는 대통령 거부권의 힘이 살아있기 때문에 192석에 달하는 '반윤 전선'이 힘을 합쳐도 원하는 대로 특검의 칼날을 휘두를 수는 없지만, 여당 내에서 단 8명의 이탈표만 생긴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진다.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채상병 특검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는데, 국민의힘 내에서도 채상병 특검, 김건희 여사 의혹 관련 특검 등을 두고 기존 당내 입장과 다른 목소리가 분출되고 있다.
변수는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개혁신당의 서로 다른 우선순위인데, 이들이 어떤 관계를 설정하는지에 따라 22대 국회 초반 특검법 정국의 향배가 달려있다.
민주 "21대 안에 채상병 특검 처리" 국힘 내에서도 "전향적"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외압의혹을 다룰 특검법을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종료되는 다음달 29일 전에 처리할 계획이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는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당 원내대표가 만나 상의할 일"이라고 말했지만, 총선에서 민심이 확인된 만큼 본회의 자체를 피하는 것은 힘든 상황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라 있는 채상병 특검법은 지난 3일자로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됐다. 본회의만 열리면 언제든 표결이 가능한 상태다. 21대 의석구조 상 민주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법안 통과는 사실상 예정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관건은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대해 15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5월 말에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본회의 재의 절차 이전에 21대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끝나 법안이 자동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민심의 회초리를 받아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 보고 있다. 만약 거부권과 함께 21대 국회 임기 종료로 특검법안이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방침이다. 거대 반윤 전선 내에서 이견이 없는 주제인 동시에 여권에서도 다수의 이탈표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도부 소속의 한 의원은 "이종섭 전 호주대사 논란이 총선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쓰기도 힘들 것이고, 여권 내에서도 일부가 호응할 것이라 보기 때문에 채상병 특검은 빨리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국회 재의 절차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필요한 의석은 200석이다. 22대 국회가 열렸을 때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8명만 찬성하더라도 특검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윤창원 기자이미, 경기 성남 분당갑에서 당선된 안철수 의원이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채상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 도봉갑 김재섭 당선인도 이날 CBS 유튜브 지지율대책회의에 출연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돌아선 민심을 피부로 느낀 수도권 당선자들은 물론, 비윤계 생환자들까지 고려할 경우, 여당 내 8명의 이탈은 가시권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내에서 대통령의 후광 없이 스스로의 역량으로 당선된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탈표가 아니라 개개인의 소신 투표로 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192석, 김건희 특검은 우선순위·판단 달라…관계 설정 향배는
김건희 특검과 관련해서도 국민의힘 김재섭 당선인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KBS라디오 전격시사)"고 말했지만, 채상병 특검보다는 여당 내 호응이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야권 연대가 더 강해져야 하지만, 반윤전선의 해법이 크게 엇갈리는 양상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지난 12일 오전 비례대표 당선인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모습. 윤창원 기자조국혁신당은 김건희 여사 특검 이전에 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특검을 1순위로 추진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김 여사 관련 특검법에는 속도를 낼 방침이지만, 한 전 비대위원장 특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다.
개혁신당은 주가조작 의혹은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으로 갈 수 있지만,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에 대해서는 국정조사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특검에 대해서는 동조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우선순위와 가치 판단의 차이는 실제 특검법 추진 정국에서 갈등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민주당 단독으로는 거부권을 넘어설 힘이 없기에 야권 연대가 필수적이지만, 섣불리 '한동훈 특검'과 같은 '하이 리스크' 전략에 동참했다가 민심의 역풍으로 인한 피해를 오롯이 감당해야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조국혁신당과 개혁신당은 각자의 우선순위에 따라 움직여야 지지층의 호응을 유지할 수 있고, 연대가 깨지더라도 잃을 것은 적다. 따라서 민주당이 어느 수준까지 양보와 타협을 하며 안팎을 모두 만족시키는 지가 관건이다.
야권 관계자는 "조국 대표와 이준석 대표는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때문에 반윤 전선에 참여하더라도 민주당에게 끌려 다닐 이유가 없다"며 "큰 방향에는 공감해도 다수인 민주당이 추진하는 방향이 마음에 안 들면 더 강하게 비토를 놓으며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에 특검이 생각만큼 빠르게 실현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