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다 걸어도 모자랄 판에…'개발'에 쏠린 총선
총선을 앞두고 여야 대진표가 하나 둘 완성되고 있는 가운데,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할 공약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연간 합계출산율이 0.6명대를 향해 가고 있지만, 후보들의 공약은 살고 있는 지역에 보다 나은 사회간접자본(SOC)을 유치하겠다는데 쏠려있는 모양새다.
'GTX사업의 功을 자기들만 가져갔다'며 윤 대통령 합동 비난 나선 인천지역 민주당 후보들
지난 7일 인천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맹성규, 박찬대, 정일영, 허종식, 노종면 등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한 자리에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다.
제목은 '인천시민의 숙원사업 GTX-B사업을 총선이벤트로 전락시킨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
인천지역의 발전을 위해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노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이 모두 노력해왔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인천에서 GTX-B 착공기념식을 열면서 야당 인사들은 배제한 채 정부 측 인사들만 초대해 행사를 치렀다는 것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경인선 철도 지하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최대 관심 SOC 사안이 GTX-B노선 건설이다 보니, GTX-B노선 착공을 마치 윤 대통령과 현 정부만의 공(功)으로 보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작용한 셈이다.
여야 구분 없이 지역 내 '개발 공약'에 열 올리는 후보들…"정부 정책, 우리 지역까지 오도록 하겠다" 호언장담지역 내 개발사업에 대한 여야 후보들의 치적 홍보와 공약 경쟁은 인천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에서는 보다 더 쾌적한 생활환경과 출퇴근 편의성을 제공하겠다며, 비수도권에서는 수도권에만 집중된 각종 인프라를 지방으로 당겨오겠다며 모든 후보들이 앞 다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보들은 부동산 시장이 2년째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자 재건축·재개발과 같은 부동산 개발공약보다는 지역주민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시설의 건설이나 철도·도로 구축과 같은 시설 공약을 다수 제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가산업단지에 교육과 문화, 편의시설을 함께 갖추도록 해 정주여건을 높이고, 규제자유특구 지정에 대한 지자체의 권한을 늘리는 등 SOC 투자를 활성화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정부가 지난 1월 교통분야 민생토론회를 통해서 GTX를 기존 A·B·C에서 D·E·F까지 확대해 건설하고, 지방에도 GTX급 광역철도망을 구축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여야 구분 없이 일제히 자신의 지역구에 해당 노선들이 지나도록 하겠다는 공약이 제시됐다.
수도권 후보의 경우 정부가 제시한 노선을 연장시키거나 역사 위치를 변경토록 해 GTX 역을 지역구 안이나 인근으로 옮기도록 하겠다거나, 지방 후보가 지방광역철도 건설 시 본선이 지역구를 지나지 않을 경우 지선이라도 건설해 본선과 연결이 되도록 하겠다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부-의사 갈등 심화되자 맞춤경 개발 공약 쏟아낸 후보들…지역의대 정원확대,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신설 비롯해 '전국에 서울대 10개 만들겠다'까지
정부와 의사 측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이와 관련한 교육·보건시설 건설 공약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당 후보들은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움직임에 발맞춰 자신의 지역구에 위치한 의대의 정원확대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역의료 역량 강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하자,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법 등을 통해 지역의료를 개선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민주당은 의대에 그치지 않고 지역거점 국립대에 서울대 수준의 행정과 재정을 지원해 전국에 서울대 10개를 만들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지난 총선 때도 개발공약 쏟아져 나왔지만 재정 필요한 공약 중 실현된 것은 절반 뿐문제는 이같은 사업들은 대부분 입법공약 보다는 개발 중심의 지역공약인 탓에 국회의원에 당선되더라도 입법활동만으로는 실현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020년 21대 총선 당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251명의 재정 공약 완료율은 50.54%로 나타났다.
이행률 자체가 절반 수준에 그친 것도 문제지만, 이들 공약 중 28.3%에는 아예 재정을 어떻게 투입하겠다든지 등을 다룬 내용이 담겨있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주민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내용은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이를 어떻게 실천할지 방법론은 전혀 제시하지 않은 전형적인 공(空)약인 셈이다.
여야 경쟁에 정부 '민생토론회'까지 각종 개발정책 제시됐지만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지하화 비용 천문학적"더 큰 우려의 지점은 이같은 내용들이 단순히 각 후보들의 개별적인 공약으로만 제시되는 수준이 아니라 여당과 야당의 지도부, 나아가 정부로부터도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 기존의 각 부처별 신년 업무보고의 형태를 바꿔 분야별로 민생토론회를 열고 있다.
교통분야 민생토론회에서는 선거 때마다 지역민의 높은 관심 아래 단골공약으로 제시돼 왔던 철도 지하화 방안도 발표했다.
정부가 지하화 추진의지를 밝히자 국민의힘은 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 정부 발표 일주일 후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지상 철도가 깔려 있는 수원을 찾아 철도를 지하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철도 지하화는 1㎞당 공사비가 1500억원이 넘을 정도로 고비용 사업이지만 상부를 개발해 수익을 거둔다면 재정을 많이 투입하지 않고도 개발이 가능하다며 긍정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상부 개발의 경제성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인 탓에 야당에서는 이런 정부·여당의 행보를 견제할 법도 한데, 민주당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한 위원장의 수원행 다음 날 철도, GTX, 도시철도 구분 없이 모든 도심구간을 지하화하고, 복선화와 철도망 용량까지 확대하겠다며 여당보다 더 큰 규모의 공약을 제시했다.
정부는 지하화 사업비로 50조원을, 민주당은 80조원을 제시했는데 이같은 재원 투입만으로 지하화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여야 모두 민자를 이끌어 내 재정 투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새로운 교통망 구축이 아닌, 이미 있는 교통시설을 지하화하는 것만으로 전국 모든 역사의 지상부 개발사업이 호재를 누릴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손기민 중앙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정치권에서 재정사업에 편입을 시키겠다거나, 특별법 등을 통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는 공약을 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얘기지만 문제는 비용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20년 전부터 선거 때만 되면 지하화 비용을 검토해주곤 했지만 그 때마다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실현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개발공약에 밀려 관심 못 받는 저출생 공약…아빠 출산휴가·1억원 대출 등 제시됐지만 '불충분한 수준' 지적
여야가 개발 공약에 몰두하는 사이 정작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한 저출산·저출생 극복방안은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부총리급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인구부 신설, 보육 무상화 확대와 아빠의 1개월 유급 출산휴가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민주당은 신혼부부에게 1억원을 대출해 주고 출산 시 자녀수에 따라 무이자·원금 50% 감면·전액 감면 혜택 제공과 같은 현금 지원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같은 수준으로는 지난해 0.72명을 기록한 후 올해 0.6명대가 확실시 되는 합계출산율의 하락세를 막아서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체코의 경우 합계출산율이 1.1명대로 낮아지자 육아휴직을 할 경우 받는 육아휴직급여의 규모(소득대체율)를 기존 월급의 88.2%까지 높이는 한편 육아휴직 보장기간을 남녀 모두 3년으로 늘리는 등 관련 정책 강화로 합계출산율을 1.8명대까지 끌어올렸다.
합계출산율이 1.1명대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체코도 이같은 적극적인 수단을 활용했는데, 0.7명대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 중인 한국에서 아빠 1개월 유급 출산휴가나 1억원 대출 정도로 출산을 유발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은 피하기 힘든 모양새다.
정부가 딱딱한 부처별 발표에서 벗어나 민생 속으로 들어가겠다며 야심차게 기획한 민생토론회의 경우도 전남지역 토론회까지 벌써 20차례나 진행이 됐지만, 저출생 극복과 관련한 내용은 늘봄학교 확대 등 교육분야를 다룬 9차 토론회가 유일했다.
반면 부동산, 도로·철도 등 SOC 건설분야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활력있는 민생경제'를 주제로 한 1차 토론회부터 시작해 부동산, 교통 등 소관 업무는 물론 각 지역별 개발사업까지 모두 관여하며 10여 차례나 토론회에 참여하는 등 단골손님이 됐다.
지역 총선후보들도 각종 개발사업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더 많은 공을 세웠고, 향후 과정 또한 책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라며 상대 후보나 진영과의 비난전까지 불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역 내 인구 증가나 출생율 제고와 관련해서는 이렇다 할 신경전조차 펼치지 않고 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한 한 지역구 후보자 측 관계자는 "당선된 후 국회에서 의정활동을 하는 과정에서는 국가적 아젠다나 기후, 인구 등 직면한 대형 위기에 대해서 논의할 수 있지만 지역구 선거 과정에서는 유권자들의 반응을 즉시 끌어낼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보니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총선의 경우 누가 내 지역에 더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냐, 어느 당 당대표가 더 좋은 메시지를 가져오느냐에 관심이 모이다보니 저출생 문제가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